- "제발 국민들의 원성에 귀 기울이고, 처세 하기를"
- 비대면 아닌 대면의 소통 이뤄져야

장두이 문화국장
장두이 문화국장

핸리 새비지 랜도어(Henry Savage Landor), 그리피스(W. Griffis) 등 몇몇 서구인들이 과거에 우리나라를 가리켜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도 온통 시끄럽지만, 특히 내년에 치르는 대선 때문에 더 그렇다. 중국 친구의 말처럼, ‘작은 나라니까 와글와글한 것’이 아니다.

역사가 말해주지만,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이 그러했던 것처럼 난세에 구국영웅은 그냥 저절로 나오는 아니다. 오천년 역사에 손에 꼽을 정도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 또한 마찬가지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 하지만, 영웅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규정짓는 것이 더 맞을 터이다.

그는 어린 시절엔 말썽꾸러기에 낙제생이었다. 그러나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 입학, 150명 중에서 8등으로 졸업 후, 인도 쿠바 등지에서 군 생활을 영위하고, 남 아프르카의 보어전쟁에 참가, 포로로 잡혀 있다가 탈출, 전쟁영웅(?)이 되며, 정계에 진출한다. 결국 1차 세계대전을 거쳐 2차 대전 중심에서 총리로서 리더로서, 그는 국민을 단합시키는데 성공한다.

새삼 그가 남긴 고뇌의 명언들이 떠오른다.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반론은 유권자와의 5분 대화다.”

“정치인은 내일, 내주, 내달, 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자다.”

“의원 여러분에게 고합니다. 난 피와 땀과, 눈물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독수리가 조용할 땐 앵무새가 지저귀더라.”

대한민국 건국 후, 우리 대통령들의 역사는 처참하고 처절하다. 모두가 심판대에 얹혀 진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만다. 이대로 전통이 돼 버리는 건가? 앞으로 또 얼마나 그러할 것이고, 또 얼마나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이라는 완장으로 불쌍한 국민들을 우롱할까? 양식 있는 유권자들은 대선이고 총선이고 싸늘한 의식으로 식어버렸나? 이런 식의 정치 방정식 말고는 없는 것인가? 외국인 거스 히딩크가 대한민국의 축구를 일으켜 세웠듯이, 우리 대통령도 이젠 용병을 데려와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제발 국민들의 원성에 귀 기울이고, 치세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 옛 시절엔 암행어사도 있었고 임금의 민가 暗行도 있어왔다.

한 예로 성종 임금이 남산 기슭에 있는 한 초상집을 지나게 됐다. 그런데 초상집인임에도 불구하고 노래 소리가 들려오고, 한 아낙이 춤까지 추는 것이었다. 하도 기이해 성종이 상주를 불러 까닭을 물었다.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마침 아버님 생신까지 겹친 날이라, 전 노래를 부르고, 제 아낸 춤을 추는 것입니다요.”

임금이 암행을 하는 것은 백성들의 생활을 살피고, 돌보고, 그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기 위함이다. 말 그대로 구중궁궐은 또 다른 절벽 깜깜이요, 無主孤魂 감옥살이기에 직접 발품 팔아 백성들의 현실을 살피고 둘러보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을지언정, 비대면이 아닌 대면의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곧 커뮤니티 센스인 것이다.

대선 주자들은 이 유명한 명언을 다시 새겨보시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링컨의 명언)

인도의 詩聖 타골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방의 등불’이라고 했다.

KOREA~. 이제 온 누리에 등불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렵게 켠 불꽃..... 제발 꺼뜨리지나 말아다오!

                                            <Today-korea 장두이 문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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